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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한국사

후삼국시대 - 통일신라와 후고구려, 후백제

by 트릴리언 2025.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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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삼국 시대

1) 호족의 등장

(1) 배경

신라 하대(9세기)에는 진골 귀족들 사이에서 왕위 다툼이 심화되었고, 이로 인해 지방 세력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 신라는 세금 징수를 강화하고 사회 혼란이 가중되었으며, 이에 따라 농민 봉기가 발생하였습니다.
  • 이러한 혼란 속에서 왕권이 약화되었고, 지방 세력(호족)이 점차 성장하였습니다.

(2) 호족의 성장

지방의 독립적인 세력이 커지면서 중앙 정부와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3) 호족의 특성

  • 지방을 독자적으로 다스리는 세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 대부분 촌주층 출신이었으며, 다양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군사적 기반 : 낙향한 군진 세력(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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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적 기반 : 군소 세력(견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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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적 기반 : 해상 무역 세력(왕건)

(4) 호족의 사상적 기반

  • 불교 :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성향을 가진 선종 불교가 유행하였습니다.
  • 교종 : 왕실과 백성 중심, 계율을 강조함
  • 선종 : 백성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시하며, 후에 확장되어 임제종으로 발전함

 

2) 풍수지리설의 영향

  • 도선 승려로 인해 풍수지리설이 신앙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 또한, 자연환경(산, 돌, 강, 바다 등)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3) 호족과 6두품 세력의 관계

(1) 6두품 세력의 특징

  • 신라 중대 이후 왕족들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면서, 6두품의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 왕권 강화를 위해 6두품 귀족들의 역할이 축소되었으며, 주요 정책에서의 영향력도 제한적이었습니다.

(2) 6두품과 호족의 갈등 및 연대

  • 신라 말기에 6두품 출신 지식인들은 호족과 연대하거나, 호족을 비판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 6두품 세력은 신라의 골품제를 비판하며,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였습니다.

 

2. 후백제

1) 견훤의 후백제 건국

  • 892년, 무진주(지금의 광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신라로부터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 이후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었습니다.
  • 견훤이 900년에 완산주(지금의 전주)를 수도로 삼아 후백제를 건국했습니다.
  • 국호를 '백제'로 하고, 자신이 왕을 자처하며 신라와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

2) 신라와 고려와의 관계

  • 견훤은 신라를 공격하며 세력을 넓혔고, 927년에는 신라의 수도 경주를 공격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즉위시켰습니다.
  • 그러나 후고구려(고려)를 세운 궁예와, 후에 그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과의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 935년, 견훤은 왕위 계승 문제로 아들 신검에게 쫓겨났고, 결국 고려로 망명하여 왕건을 도와 후백제 정복을 도왔습니다.
  • 936년, 고려가 후백제를 멸망시키며 통일을 이뤘습니다.

 

 

2. 후고구려

1) 궁예의 후고구려 건국

  • 895년부터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하며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 신라 왕족 출신 궁예가 901년에 송악(지금의 개성)에서 후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변경하고 수도를 철원으로 옮겼습니다.
  • 911년, 다시 국호를 태봉으로 변경하며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2) 궁예의 몰락

  • 궁예는 점점 강압적인 통치를 하며 신하들과 백성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 특히 "미륵 신앙"을 내세워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만들려고 했고, 이에 반발이 커졌습니다.
  • 918년, 신하였던 왕건이 반란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했습니다.
  • 이후 궁예는 도망쳤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두 나라의 건국은 신라 말기의 혼란과 지방 세력의 성장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결국 고려가 이들을 통합하며 새로운 통일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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