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해
발해는 698년 대조영에 의해 건국되었습니다. 대조영은 본래 고구려 유민 또는 말갈족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나라에 의해 통치되던 지역에서 독립을 추구했습니다. 당시 당나라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통제하려 하자, 대조영은 이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천문령 전투(698년)에서 당나라군을 크게 물리친 후, 동모산 지역(현재 중국 동북 지역)에서 독립 국가를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진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습니다.
2. 발해 역대 왕
1대 고왕 | 698 ~ 719 | 9대 간왕 | 817 ~ 818 |
2대 무왕 | 719 ~ 737 | 10대 선왕 | 818 ~ 830 |
3대 문왕 | 737 ~ 793 | 11대 대이진 | 830 ~ 857 |
4대 대원의 | 793 | 12대 대건황 | 857 ~ 871 |
5대 성왕 | 793 ~ 794 | 13대 대현석 | 871 ~ 894 |
6대 강왕 | 794 ~ 809 | 14대 대위해 | 894 ~ 906 |
7대 정왕 | 809 ~ 812 | 15대 대인선 | 906 ~ 926 |
8대 희왕 | 812 ~ 817 |
3. 발해 역대 왕들의 업적
1) 1대 고왕 대조영 (698~719)
- 발해를 건국한 왕으로, 초기 국호는 ‘진국’이었습니다.
- 천문령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독립적인 국가를 세웠습니다.
- 말갈족 일부를 통합하며 국가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2) 2대 무왕 대무예 (719~737)
- ‘인안’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 발해의 국력을 크게 강화하고 대외 정복 활동을 펼쳤습니다.
- 당나라와 대립하며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습니다.
- 732년, 일본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당나라 산둥반도를 공격하였습니다.
- 이후 당나라가 거란을 격파하자, 당나라와 친선 관계를 유지하고 등주에 ‘발해관’을 설치하였습니다.
- 신라와도 관계가 긴장 상태였으며, 말갈과 거란을 적극적으로 정복하려 하였습니다.
3) 3대 문왕 대흠무 (737~793)
- ‘대흥’, ‘보력’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 황제권을 강화하고 당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였습니다.
- 수도를 동모산에서 중경(현재 요령성)으로 옮긴 후, 다시 상경(현재 흑룡강성)으로 이전하였습니다.
- 당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발해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 중앙 행정 제도를 정비하고 불교를 장려하여 문화와 학문을 발전시켰습니다.
- 일본과의 교류를 확대하며 발해를 더욱 성장시켰습니다.
4) 10대 선왕 대인수 (818~830)
- ‘건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 발해의 전성기를 이끈 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5경 15부 62주 체제를 완성하였습니다.
- 거란과 말갈을 정복하며 국력을 강하게 키웠습니다.
- 경제적 번영과 문화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해동성국’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 일본과의 교류를 활발히 하였으며, 신라와도 일정 부분 교역을 유지하였습니다.
5) 15대 애왕 대인선 (906 ~ 926)
- 발해의 마지막 왕으로, 926년 거란(요나라)의 침공을 받아 발해가 멸망하였습니다.
4. 발해의 정치사
1) 중앙 조직
문왕 시기에는 당나라의 제도를 수용하여 3성 6부제로 중앙 조직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명칭과 운영 방식에서는 발해만의 독자성을 유지하였습니다. 특히 정당성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유교적인 명칭인 충(忠), 인(仁), 의(義), 지(智), 예(禮), 신(信)부를 사용하였습니다.
왕 |
정당성 | 선조성 | 중대성 | 중정대 | 문적원 | 주자감 |
↓
좌 사 정 | 우 사 정 | ||||
충 부 | 인 부 | 의 부 | 지 부 | 예 부 | 신 부 |
- 정당성 : 발해에서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의 행정 서무 기구로, 대내상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정당성은 좌사정과 우사정으로 나뉘었으며, 그 아래 6부를 두었습니다.
-좌사정: 충부(인사 담당), 인부(재정·행정 담당), 의부(외교·교육 담당)
-우사정: 지부(군사 담당), 예부(법률 담당), 신부(행정 담당)
- 중정대 : 관리들을 감찰하는 업무를 담당하였습니다.
- 문적원 : 국가의 도서관 역할을 하였으며, 서적과 문서를 관리하였습니다.
- 주자감 : 발해의 국립 대학 기관으로, 고등 교육을 담당하였습니다.
- 7시 : 발해의 중앙 부서로, 행정 업무를 분담하여 수행하였습니다.
2) 지방 행정 구역
선왕 시기, 넓어진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5경 15부 62주 체제로 정비하였습니다.
- 5경 : 상경, 중경, 동경, 남경, 서경을 두어 수도 기능을 분산하였습니다.
- 15부 : 지방 행정의 중심 지역으로, 도독을 두어 지방 행정을 총괄하도록 하였습니다.
- 62주 : 부 아래에 설치되었으며, 자사를 파견하여 지방을 다스렸습니다. 주 아래에는 현을 두고 현승을 파견하였습니다.
- 촌 : 촌락은 말갈족 출신의 촌장이 통치하였으며, 촌장은 지방관이 아닌 토착 세력으로 인정되었습니다.
3) 군사제도
- 중앙군: 발해의 중앙군은 10위로 구성되었으며, 각 부대에는 대장군과 장군이 지휘관으로 배치되었습니다.
- 지방군: 지방에서는 촌락민을 동원하여 군사를 조직하였으며, 지방 방어를 담당하였습니다.
5. 발해의 경제사
- 솔빈부에서 생산된 말이 주요 수출품으로 활용되었습니다.
- 발해는 우수한 구리 제련 기술을 보유하여 질 좋은 구리를 생산하였습니다.
- 도자기 산업이 발달하여 당나라로 수출되었습니다.
- 교역로를 통해 솔빈부의 말과 도자기 등을 외국으로 수출하였으며, 귀족들이 사용하는 사치품을 수입하였습니다.
- 주요 교역로: 거란도, 일본도, 신라도 등 다양한 교역로를 활용하였습니다.
6. 발해의 불교
- 불교는 왕실과 귀족층의 지원을 받으며 발전하였습니다.
- 발해에서 제작된 이불병좌상(두 불상이 나란히 앉아 있는 형태의 불상)은 고구려 양식을 계승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 정소는 발해의 대표적인 승려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일본의 불교 서적에서 발해 승려 정소의 활동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는 불경을 연구하고 일본 불교계와 교류를 하였습니다.
7. 발해의 대외 관계
1) 발해와 주변국
- 당나라 : 초기에는 대립했지만, 8세기 이후에는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사신을 파견하고 문화적 교류를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발해의 왕이 당나라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신라 : 서로 견제하면서도 경제적 교류를 지속했습니다.
- 거란과 말갈(여진) : 발해는 주변 부족들을 복속시키거나 연합하여 세력을 확장했지만, 거란과의 충돌로 인해 멸망(926년)하게 됩니다.
2) 발해와 신라의 관계
일반적으로 발해와 신라는 협력보다는 견제와 경쟁의 관계가 강했지만, 경제적 필요로 인해 일정한 교류는 유지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발해를 고구려 계승 국가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1) 경쟁과 갈등
- 발해가 건국된 후, 신라는 이를 견제했습니다. 신라는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활용해 발해를 압박하려 했으며, 발해 역시 신라와 직접적인 국경을 맞대지는 않았지만 서로 긴장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 등재 서열 사건 : 당의 빈공과 장원 경쟁에서 신라 최언위가 장원이 되자 발해에서 항의한 사건입니다.
- 쟁장 사건 : 당의 외국 사신을 초빙할때 자리 배치를 두고 경쟁한 사건입니다.
- 신라는 발해를 ‘북국(北國)’이라 불렀고, 발해는 신라를 ‘남국(南國)’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서로를 경쟁 국가로 인식했음을 보여줍니다.
(2) 경제적 교류
- 발해와 신라는 상호 교류를 지속했습니다. 신라 상인들이 발해를 방문해 물품을 교역한 기록이 있으며, 신라를 거쳐 발해의 사신이 당나라로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발해의 사신이 신라를 통해 일본으로 가는 등 외교적, 경제적 경로로 신라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3) 외교적 관계
- 발해가 일본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자, 신라는 이를 견제하려 했습니다.
- 신라 내부에서는 발해 유민들이 망명하는 경우도 있었고, 신라가 이를 받아들인 기록도 있습니다.
8.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 증거
- 지배층 구성 : 발해의 지배층 다수가 고구려 유민이었습니다. 특히 왕족인 대씨(大氏)는 고구려 귀족 출신으로 여겨집니다.
- 문화적 유사성 : 발해의 수도(상경 용천부)에서 발견된 유적들은 고구려의 건축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벽화나 불교 조각 등에서도 고구려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행정 제도 : 발해의 중앙 관제는 고구려의 관제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3성 6부제’는 당나라의 제도를 일부 받아들이면서도 명칭과 운영 방식에서 고구려식 요소가 포함되었습니다.
- 국내외 인식 : 신라는 발해를 ‘북국(北國)’이라 불렀으며, 중국 역시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인식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2025.02.19 - [한국사/한국사] - 한국사 시대구분과 역대왕 연대표
한국사 시대구분과 역대왕 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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