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사/선사시대-고조선

고조선의 주변 국가들 2 - 옥저 동예 삼한

by 트릴리언 2025. 2. 20.
반응형

3. 옥저 (沃沮)

1) 옥저의 역사

옥저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대체로 기원전 2세기경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옥저는 고조선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반도 동북부의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국가였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옥저는 한나라의 침입 이후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였지만, 결국 고구려의 세력 확장으로 인해 자주적인 국가 체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기원후 5세기경 완전히 고구려에 흡수되었습니다.

고구려는 미천왕 시기(4세기)에 옥저를 완전히 정복하였으며, 이후 옥저 지역은 고구려의 지방 행정 체계 속에서 운영되었습니다. 옥저는 이후 독립적인 세력으로 등장하지 않았으며, 역사 속에서 고구려의 한 지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2) 옥저의 정치 체계

옥저는 독립적인 중앙집권 국가라기보다는 소국 연합체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왕권이 강력하지 않았으며, 주변 강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옥저에는 왕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며, 대신 '후'라는 지방 세력이 존재하였습니다.

옥저의 통치자는 '후'라고 불리며, 일정한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 군장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강력한 중앙 권력을 갖추지는 못했으며, 주변 강국의 지배를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고구려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옥저는 점차 독립성을 잃었고, 결국 고구려에 완전히 편입되었습니다.

3) 옥저의 사회 구조

옥저의 사회 구조는 신분제적인 요소가 있었으며, 특히 부락 단위로 운영되는 부족 사회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왕이나 강력한 중앙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 지역의 군장들이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옥저 사회에서 가장 독특한 풍습 중 하나는 "민며느리제(민며느리혼)"입니다. 이는 딸을 어릴 때부터 남편 될 사람의 집에 보내어 살게 하고, 성장한 후에 결혼을 정식으로 인정하는 풍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노동력을 미리 확보하는 역할을 했으며, 옥저의 독특한 사회적 관습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옥저는 순장 풍습이 있었으며, 부모가 죽으면 자녀들이 함께 묻히는 관습이 존재하였습니다. 이는 후대의 고구려 문화와도 일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4) 옥저의 경제

옥저는 농경과 어업, 수렵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국가였기 때문에, 어업이 발달하였으며, 고구려에 공물을 바치는 형태로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옥저의 주요 생산물은 소금과 해산물이었으며, 이는 주변 국가들과의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고구려는 옥저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겼으며, 이를 이용하여 경제적 이득을 얻었습니다.

옥저는 내부적으로 자급 자족적인 경제 체계를 유지했으나, 중앙집권적인 국가 구조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적 규모가 크지 않았습니다.

5) 옥저의 외교 관계

옥저는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1. 고조선과의 관계
    • 초기 옥저는 고조선의 일부로 존재하거나, 혹은 고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 하지만 고조선이 한나라에 의해 멸망한 후,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2. 한나라와의 관계
    • 옥저는 한나라와 직접적인 외교 관계를 맺기보다는, 한나라의 세력권 내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3. 고구려와의 관계
    • 옥저는 고구려의 세력 확장 과정에서 지배를 받았으며, 결국 고구려에 완전히 병합되었습니다.
    • 미천왕 시기(4세기)에 옥저는 고구려의 지방 행정 체계로 편입되었으며, 이후 독립적인 국가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4. 동예 (東濊)

1) 동예의 역사

동예의 기원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대체로 기원전 2세기경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동예는 고조선과의 관계 속에서 발전하였으며, 이후 한나라의 세력 확장과 더불어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예는 강력한 군사력이나 중앙집권적 통치 체계를 갖추지 못하였고, 주변 강국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5세기경에 이르러 동예는 고구려의 세력 확장에 따라 완전히 흡수되었으며, 이후 독립적인 국가로 다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2) 동예의 정치 체계

동예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지 못하였으며, 부족 연합체의 형태로 운영되었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동예가 독립적인 국가 구조를 유지하기보다는 각 부족이 독자적인 정치 체계를 운영하는 형태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예에는 왕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없으며, 대신 "읍군과 삼로"라는 지방 지도자들이 존재하여 각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읍군과 삼로는 지역적인 군장 역할을 하였으며, 각 부족 단위로 행정과 군사적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연합하여 강력한 국가 체계를 형성하지는 못했고, 결국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3) 동예의 사회 구조

동예의 사회 구조는 부족 중심의 자율적인 운영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중앙집권적 국가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각 부족들이 상당한 독립성을 유지하며 생활하였습니다.

동예 사회에서 가장 독특한 풍습 중 하나는 책화 제도입니다. 책화란 다른 부족의 경계를 침범하면 변상해야 하는 제도로, 이는 동예 사회가 부족 중심의 생활권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동예 사회에서는 혼인 풍습도 독특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족외혼"이 이루어졌으며, 같은 부족 내에서는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었습니다.

장례 문화는 "후장"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고구려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즉, 무덤에 많은 물건을 함께 묻는 풍습이 있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순장의 흔적도 나타납니다.

4) 동예의 경제

동예는 농경과 수렵, 어업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예는 오곡을 재배하는 농경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동예가 곡식을 재배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예는 특산물로 단궁, 과하마, 반어피를 생산하였으며, 이는 주변 국가들과의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 단궁 : 짧은 활로, 동예의 특산품 중 하나였습니다.
  • 과하마: 작은 몸집의 말로, 기동성이 뛰어났습니다.
  • 반어피 : 물고기의 비늘이 있는 가죽으로, 방수 기능이 뛰어났습니다.

이러한 특산품들은 동예가 주변 국가들과 교류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으며, 특히 고구려와의 관계 속에서 경제적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5) 동예의 외교 관계

동예는 주변 강국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특히 고구려와의 관계 속에서 점차 독립성을 잃었습니다.

  1. 고조선과의 관계
    • 초기 동예는 고조선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조선이 멸망한 후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2. 한나라와의 관계
    • 동예는 한나라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는 않았지만, 한나라의 세력권 내에서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3. 고구려와의 관계
    • 동예는 고구려의 세력 확장 과정에서 점차 독립성을 잃었으며, 5세기경 고구려에 완전히 흡수되었습니다.

 

5. 삼한 (三韓)

1) 삼한의 역사

삼한은 기원전 2세기경,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전 등의 기록에 따르면, 삼한은 본래 진국에서 기원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진국이 점차 분열되면서 마한·진한·변한의 세 집단이 형성되었고, 이를 통틀어 삼한이라고 불렀습니다.

삼한은 각기 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중앙집권적인 국가 체제를 갖추지는 못했고, 결국 백제·신라·가야 등의 강력한 국가들이 등장하면서 삼한의 세력은 흡수되었습니다.

2) 삼한의 정치 체계

삼한은 연맹체 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각 부족이나 소국들이 독립적인 정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일정한 연맹 형태로 협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 마한 : 삼한 중 가장 넓은 지역(현재의 충청도·전라도 일대)을 차지하였으며, 54개의 소국이 존재했습니다.
  • 진한 : 경상도 지역에 해당하며, 12개의 소국이 있었습니다.
  • 변한 : 경상남도와 전라도 일부 지역에 해당하며, 12개의 소국이 있었습니다.

각 소국은 "군장 또는 왕"이 다스렸으며, 마한에는 큰 군장(진왕)이 존재하여 전체 삼한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진왕의 권력이 절대적이지는 않았고, 각 지역의 소국들은 상당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 삼한의 사회 구조

삼한의 사회는 농경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대체로 평등한 구조를 유지하였습니다. 하지만 각 소국에는 군장과 귀족 계층이 존재하였으며, 일반 백성들은 이들에게 조공을 바치거나 노동력을 제공하는 형태로 살아갔습니다.

또한, 삼한 사회에는 철기 문화가 발달하였으며, 농업 생산력이 향상됨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삼한의 사람들은 움집 형태의 주거 생활을 하였으며, 보리·콩·쌀 등의 작물을 재배하였습니다.

혼인 풍습은 족외혼이 일반적이었으며, 일부다처제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4) 삼한의 경제

삼한의 경제는 농업과 철기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하였습니다.

  • 농업 : 삼한은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농업 사회였으며, 쌀, 보리, 콩, 조, 기장 등의 곡물을 재배하였습니다.
  • 철기 산업 : 삼한 지역에서는 철이 많이 생산되었으며, 이를 이용하여 농기구·무기·장신구 등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변한 지역은 철 생산이 활발하여 중국 및 일본과의 교역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 수공업 : 철기와 함께 도기 제작 기술도 발달하였으며, 다양한 토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 교역 : 삼한은 중국의 한나라, 일본의 왜 등과 활발한 교역을 하였으며, 철기 및 토기를 수출하였습니다.

5) 삼한의 종교·문화

삼한 사람들은 자연 숭배와 제천 의식을 중요시하였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삼한에서 5월과 10월에 제천 행사가 열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수릿날 : 5월에 열리는 제천 행사로,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였습니다.
  • 계절제 : 10월에 열리는 행사로,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삼한 사람들은 천신을 숭배하였으며, 무속 신앙이 발달하였습니다. 샤머니즘이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으며, 부족 단위로 신을 모시는 제사장이 존재하였습니다.

6) 삼한의 외교 관계

삼한은 주변 국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으며, 특히 중국·고구려·일본과의 관계가 중요했습니다.

  1. 한나라와의 관계
    • 한사군의 성립 이후, 삼한은 한나라와 교역을 지속하였으며 철기·농산물 등을 교환하였습니다.
  2. 고구려와의 관계
    • 삼한은 초기에는 고구려와 직접적인 접촉이 많지 않았으나, 이후 고구려의 세력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영향권에 들게 되었습니다.
  3. 일본(왜)과의 관계
    • 삼한 중 변한 지역은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하였으며, 철을 수출하였습니다. 일본의 초기 문화 형성에 삼한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고조선 주변 국가들은 각기 다른 특성과 문화, 정치적 배경을 가진 독립적인 왕국들로, 고조선과 상호작용을 하면서도 점차 독립적인 길을 걸어갔습니다. 각국의 왕들은 국가의 정치적, 군사적 안정을 위해 많은 노력과 결단을 내렸으며, 이들의 유산은 후에 한국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025.02.20 - [한국사/선사시대-고조선] - 고조선의 주변 국가들 1 - 부여와 고구려

 

고조선의 주변 국가들 1 - 부여와 고구려

고조선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큰 영향을 미쳤던 고대 국가로, 그 주변에는 다양한 고대 국가들이 존재했습니다. 각국은 고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때로는 동맹을 맺거나 전쟁을 벌이

trillion91.com

 

2025.02.19 - [한국사/선사시대-고조선] - 고조선의 시작과 끝 -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고조선의 시작과 끝 -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고조선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하여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걸쳐 존재하였습니다. 단군 신화에 따르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역사적으로

trillion91.com

 

2025.02.19 - [한국사] - 한국사 시대구분과 역대왕 연대표

 

한국사 시대구분과 역대왕 연대표

-시대구분시대국가연도구석기시대 기원전 70만년 ~ 기원전 8000년경신석기시대 기원전 8000년경 ~ 기원전 2000년경청동기시대고조선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08년철기시대 기원전 4세기 ~ 부여기원

trillion91.com

 

반응형